A FEW THINGS ABOUT PAN FOCUSED PHOTOGRAPHY
사진을 처음 배우면 노출의 3요소인 조리개, 셔터스피드, 감도의 삼각관계를 공부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서 등가노출일지라도 이들간 조합에 따라 촬영자가 의도하는 시각적 효과를 부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예컨대 느린 셔터스피드는 정적 사진에 운동감을 부여할 수 있으며,
조리개를 열면 아웃포커스(out of focus)로 배경으로부터 피사체를 분리하거나 몽환적 사진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사진적 표현기법 중 특히 얕은 심도를 활용한 사진은 분명 육안으로 보아오던 익숙한 풍경과는 다른 특별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해준다.
‘사진은 뺄셈’이라는 말마따나 프레임 안을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가가 좋은 사진의 기준 중 하나임을 생각해본다면
아웃포커스 효과는 주 피사체를 제외한 관심 외의 풍경들을 지워주니 갑자기 사진 실력이 향상된 듯한 착각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진을 막 시작한 초심자들의 경우 모든 사진을 극히 얕은 심도로 찍으려는 경향(나 역시 그랬다)을 보이곤 하는데,
사실 아웃포커스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카메라와 렌즈의 기계적, 광학적 특성을 이용해 촬영자의 의도를 표현하게끔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시의적절하게 활용하지 않고 남발한다면 결국 장비가 만들어주는 일률적인 이미지일 뿐 촬영자 만의 독특한 시각적 차별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조리개를 한껏 조여볼 차례인데,
처음 깊은 심도의 사진을 촬영해보면 생각만큼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필름이 아닌 디지털카메라(디지털이 가지는 무한한 시도가능성에도)임에도 똑딱이 혹은 핸드폰카메라로 사진이라는 취미에 입문하기 쉽지 않은 부분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즉, 핸드폰카메라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의 센서가 생산하는 사진들은 속칭 풀프레임이라 일컬어지는 DLSR 비해 깊은 심도를 가지게 마련이고,
이는 곧 얕은 심도에 의한 프레임 안 불필요한 요소들을 덜어내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진적 덜어냄을 실현하기 위하여 프레임워크, 화면의 정리정돈과 배치, 피사체와의 거리 혹은 하염없는 기다림 등 다른 옵션과 방도들을 모색해야만 하고,
실제 이러한 방법들은 터득하기까지는 다소 지루한 연습과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심도 깊은(팬포커스) 사진에 끌리는 이유는 바로 거장이라 불리는 선인들의 눈물나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심도 깊은 사진들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Josef Koudelka, Ireland, 1976
임응식, 서울, 1950
Henri Cartier-Bresson, Spain, 1933
Constantine Manos, Crete, 1962
Dimitri Baltermants, Crimea, 1942
Henri Cartier-Bresson, Italy, 1933
Henri Cartier-Bresson, Tokyo, 1965
Jean Gaumy, Iran, 1986
Jean Gaumy, France, 1976
Alex Webb, West Texas, 1975
심도 깊은 사진은 원경이든 근경이든 모두 선명하게 찍히기 때문에 냉혹한 느낌을 주는 시각적 특성을 갖는다.
아울러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있는 빠짐없이 기계적으로 기록하기에 정서나 감정을 없애버리는 경향이 있다.
한때 유행했던 소위 ‘감성사진’이라는 것이 극히 얕은 심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진 류들을 말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깊은 심도의 사진은 전체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객관적인 사실 자체를 중시하는 시각이며
어느 것 하나도 빠짐없이 현실에 근거한 냉엄한 시각이므로 철두철미하게 대상을 관찰하는 리얼리즘의 성격을 띄고 있다.
우리 인생이 TV 속에 비치는 호수의 반영과 같은 허상이 아닌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실전인 까닭에
팬 포커스는 우리네 삶을 기록하고 서로 공감하기 위한 미디엄으로서의 사진을 기술적으로 가장 잘 지지해주는 기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촬영현장에서의 심도 깊은 사진은 다루기 어려운 ‘양날의 검’과도 같다.
특히 거리에 서서 조리개를 조이게 되면 매뉴얼포커스로도 캐논이나 니콘의 기함급 DSLR의 오토포커스를 능가하는 섬광 같은 촬영이 가능한 반면,
프레임 내 객체간 관계설정과 균형, 서사구조 또는 미학적 중심과 이를 적절한 텐션으로 지지하는 주변부를 사진가가 창조주의 관점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사진은 이내 어수선하고 흡인력 없는 이미지로 전락하고 만다.
사실 촬영자가 렌즈 앞의 풍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연출 사진이 아닌 다음에야 사진적 행위는 창조주의 위치에 결코 설 수 없는 운명이다.
그저 관찰자 혹은 발견자에 머물 뿐이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말자.
우리에겐 5cm만 옆으로 이동해도 확연히 다른 사진을 만들 수 있으며,
5초만 기다려도 차원이 다른 순간을 잡을 수 있는 ‘창조의 권능’에 버금가는 ‘선택의 권능’이 주어져 있으니 말이다.
가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내가 비록 다른 이에게 심도 깊은 사진에 대해 심도 깊게 이야기 할 깜냥이 안된다하더라도
나 자신은 심도 깊은 사진을 오래도록 애정하려 한다.
왜냐면 좋은 사진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현재 나의 대답이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피사체 하나하나가 모두 빛을 발하는 그래서 사소한 단 하나의 객체라도 소외되거나 희생되지 않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즉, 내가 잘라낸 프레임 안의 모든 객체는 서로 연결되어 총체적 밸런스를 이루는 상태가 되어야 하고
이것은 깊은 심도의 사진에서 보다 쉽게 달성될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