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2017년이다.

밀레니엄 버그로 온 세계가 혼란에 빠진다던 Y2K라는 세기말 위기는 막상 닥쳐보니 기우에 불과했으니 새로운 천년에 접어든 지도 어느덧 1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직은 비록 출퇴근용 자동차들이 하늘을 날아다니진 않지만,
인공지능 컴퓨터가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를 이기고 의료기술 발전에 힘입어 환갑잔치는 이제 전통 관련 책 속에나 접할 수 있는 바야흐로 백세시대이다.


‌안동, 2017



기술의 발전은 광학기술과 전자기술을 요체로 하는 카메라 산업을 정통으로 관통하였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귀하신 몸값에 언감생심이던 35미리 풀프레임 센서를 장착한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었고,
‌카메라 제조사들은 5,000만 화소의 초고화질, 100,000 ISO에 육박하는 초 저조도 촬영능력과 광속과 같이 빠른 자동초점기능 등의 엄청난 기능을 탑재한 최첨단 카메라들을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급속한 팽창과 제조사 간의 치열한 경쟁은 다양한 제품의 출시와 더불어 신제품 출시 주기를 단축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여느 시각예술과 다르게 태생적으로 도구 의존도가 높은 사진 특성상 21세기는 참으로 호시절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디지털카메라의 눈부신 발전의 이면에는 필름카메라와 더불어 사진필름 시장의 급격한 몰락이라는 그림자가 자리한다.

우리는 사진의 대명사와도 같았던 KODAK이 디지털 시대에 대한 부적응으로 파산하는 것을 목도하였고,
지금의 동네 휴대폰 가게만큼이나 흔했던 필름 현상소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 되어버렸다.


디지털카메라가 가진 즉시성과 탁월한 경제성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연계한 활동의 용이함은 필름카메라가 제공하기 어려운 혹은 대체 불가한 편의성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포항, 2017




필름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던 시절, ‌사진은 진입장벽이 꽤나 높은 취미였다.

만약 디지털카메라였다면 LCD화면을 통해 현장에서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필름카메라의 경우 비용은 차치하고서라도 현상과 인화를 위한 시간과 기다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쉬운 예로 조리개 값에 따른 심도의 차이를 필름으로 확인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장 테스트 사진 한 장당 필름 한 컷 소요되고 EXIF 데이터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니 테스트했던 조건을 별도로 기록해두어야 한다.
나아가 별도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현상과 인화 혹은 스캔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카메라의 메카니즘을 익히고 연습하는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디지털카메라는 사진 입문자들에게 축복 그 자체이다.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고...
원하는 만큼 셔터를 누르고 즉석에서 확인 후 마음에 안 든다면 지우면 그만인 것이다.



‌경주, 2017




한편, 최근 시장동향을 살펴보면 필름이 마냥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큰 그림에서 보면 디지털카메라의 급격한 보급으로 사진을 취미로 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비록 더디긴 하나 사진을 즐기는 방법과 문화 역시 차츰 저변을 확대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필자의 경우와 같이 디지털의 축복을 입으며 사진에 입문한 후 아날로그에 대한 호기심에 필름으로 역행(회귀가 아니다)하는 부류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영국의 필름 전문제조사인 Ilford photo의 발표에 따르면
30%의 필름 유저들이 35세 미만이고 이들 중 60%는 최근 5년 이내에 필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울러 지난 몇 년 동안 전 세계 사진용 필름의 판매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실제로 2013년에서 2015년까지 Kodak 필름의 판매량은 오랜 감소세를 멈추고 5%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10월 코닥은 컬러슬라이드 필름 엑타크롬 E100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쯤에서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21세기 디지털카메라의 진보된 기술과 압도적 편의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아직도 필름사진을 찍는 걸까?


필름은 분명 디지털과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컬러필름과 흑백필름은 각각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데,
컬러필름의 경우 필름마다 고유한 색 표현력을 가지고 있으며 밋밋한 디지털의 그것과 달리 시쳇말로 색감깡패라 불릴 정도로 매력적이다.

한편 색을 제거하고 오직 피사체의 형태와 흑과 백 사이 무수한 단계의 회색이 만들어내는 톤(tone)으로 표현하는 중독성 강한 흑백필름이 있다.

오디오 쪽에서 이야기하는 MP3와 LP판의 차이와 같이
디지털 사진을 구성하는 신호정보(손으로 만질 수 없는)와는 달리 필름은 물리적 실체(손으로 만질 수 있는)를 가지는 바
디지털의 그것과 태생적으로 구별된다.

이러한 차이는 흔히 말하는 스펙으로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효율과 생산성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영역 또한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인간의 취향과 선호 그리고 사용자 경험에 따른 만족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포항, 2017

‌포항, 2016

포항, 2017




필름의 실용적 측면을 살펴보면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사진은 디지털 파일의 형태로 컴퓨터 하드드라이브에 저장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파일 포맷이나 디스플레이 방법은 변하기 마련이고
현재 보관되고 있는 JPEG 혹은 RAW 포맷(심지어 지금도 각 회사마다 포맷이 다름)이 20~30년 뒤에도 과연 범용의 이미지 포맷으로 쓰여지고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보관매체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조건은 지속적 보관성과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최적의 포맷(JPG, TIFF 등)으로 변환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점에서 디지털이 갖지 못한 필름의 물질성은 상당한 우위를 점한다.



필름 그리고 보관용 파일




그렇다고 지금 쓰고 있는 디지털카메라를 당장 중고장터에 내놓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비록 필름의 전성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필름은 여전히 생산되고 있고 또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구입’이 아닌 큰 맘 먹고 ‘장만’해야 할 만큼 만만찮은 몸값을 자랑하던 과거의 ‘명기’들이
좋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필름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착한 가격에 유통되고 있으니 그냥 한번 재미로 써보시란 이야기다.

다양한 필름을 고르고 클래식한 멋의 카메라를 소유하는 재미 그리고 찍고 난 후 현상을 기다리는 설레임 등
필름카메라는 당신이 디지털에서 느끼지 못했던 느리지만 의미 충만한 즐거움을 선사해줄 것이라 믿는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이라면,
필름사진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은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필름으로 사진을 즐기기 위한 카메라의 선택과 기회비용 그리고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알아보기로 하자.



1. 비용대결: 디지털 vs 필름



흔히 필름으로 사진하면 비용지출이 많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선입견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반드시 그렇다고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계산기 한번 두드려보자.


디지털의 경우 풀프레임 신품바디를 구입하고 5년 정도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3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렌즈 등 부대용품 제외) 필름의 경우 라이카 M마운트 중고바디를 100만원에 구입(니콘 FM2 같은 경우 25만원 내외로 더 저렴)하고,
주당 1롤씩 5년간 사용한다면 컬러필름 구입에 78만원(매주 1롤씩 3000원 * 52주 * 5년) 및 현상료에 78만원(매주 1롤씩 3000원 * 52주 * 5년)가 소요된다.

그리고 필름 소비량이 많은 경우 중고 필름스캐너를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므로 이를 위해 40만원 가량을 지출하면 총 296만원이 소요된다.


초기투자 비용이 큰 디지털과 유지비용이 꾸준히 드는 필름은
사용기간 대비 총 투입비용으로 살펴보면 사실 엇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디지털바디 사용 주기가 왜 5년 밖에 안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잘 만들어진 기계식 필름카메라의 경우 전자제품과 같은 디지털카메라보다 수명이 훨씬 길다는 것을 감안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외려 필름 쪽이 더 유리하다 할 것이다.

(참고로 필자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라이카 m6 바디는 1995년산이고, summicron 35mm f/2렌즈는 1980년산임에도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leica m6, summicron-m 35mm f2


2. 카메라 고르기: SLR vs RF



인기 많은 중고 필름카메라들은 어느 정도 시세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깨끗하게 사용하고 기능상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장터에 다시 내놓아도 구입 가격 그대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
감가율이 높은 신품 구입에 비해 부담이 적은 편이다.

다만, 신품이 아닌 다른 이가 쓰던 중고제품이니 개체마다 상태의 편차가 있는 편이고,
필름카메라를 처음 접하는 이의 경우 재품상태에 걸맞는 적정가격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므로
중고제품을 구입할 때에는 주변에 필름카메라를 잘 아는 지인을 통하거나 혹은 믿을 수 있는 전문샵을 이용해 구입하기를 권한다.



첫 필름카메라를 구매할 경우에는
아무래도 완전 기계식보다는 내장노출계가 달려있고 조리개우선 혹은 셔터우선이 지원되는 카메라를 추천한다.

35mm 필름 카메라는 크게 SLR(Single-lens Reflex)방식과 RF방식(Range Finder)으로 구분되며,
어느 방식이 우월한가보다는 촬영자의 기호와 작업환경에 맞추어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면 될 일이다.


일반적으로 SLR방식 카메라는 보이는 대로 찍힌다는 장점이 있어 RF방식에 비해 망원 계열 촬영에 유리한 반면,
촬영시 미러업(mirror-up)이 되면서 시야를 가리게 되어 대상과의 일시적 단절이 발생하고 저속셔터에서는 미러쇼크(mirror shock)로 인한 흔들림에도 취약할 수 있다.


RF방식의 카메라는 SLR방식과 달리 미러(mirror)가 없기 때문에 렌즈와 바디를 컴팩트하게 디자인할 수 있고
촬영 시에도 렌즈와 분리된 별도의 파인더로 보기 때문에 설정된 렌즈의 조리개 값과 관계없이 카메라 앞 상황변화를 잘 관찰할 수 있다.

반면, 태생적 한계로 인해 근거리일수록 시차가 발생하여 보이는 것과 찍히는 것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니콘 FE2, 펜탁스 ME super과 같은 조리개 우선이 지원되는 SLR 기종들은 과거 명성에 부합하는 성능과 함께 상태 좋은 개체들이 착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35mm 혹은 50mm 단렌즈와 거리스냅을 즐기는 타입이라면 레인지파인더 방식의 라이카 M마운트 바디 중 내장노출계가 장착되어 있는 m6 모델을 추천한다.




3. 필름 고르기: 칼라 vs 흑백



마음에 드는 카메라를 정했다면 이제 필름을 선택할 차례다.

기껏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픽쳐스타일 3~4가지 밖에 선택할 수 없는 디지털과 달리 필름은 다양한 제조사에서 생산하는 뚜렷한 개성의 필름을 이것저것 골라 쓰는 재미가 있다.
마치 세계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커피 원두의 맛이 다르듯..



필름은 가장 널리 쓰이는 컬러네거티브(negative)와 슬라이드라고 불리는 컬러포지티브(positive)
그리고 팬 크로매틱(Panchromatic)이라 일컬어지는 흑백필름이 있다.

매 촬영 컷마다 감도를 바꾸어 설정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와 달리 필름은 ISO값이 고정되어 있으므로
한 롤을 로딩하면 촬영이 끝날 때까지 촬영 중간에 감도를 변경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필름의 선택에는 다소 신중함이 필요한데,
필름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필름을 써야할지 그리고 ISO값은 어떤 걸로 정해야할지 당장 막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난하고 널리 사용되는 컬러필름으로는 후지필름 수퍼리아 C200이나 코닥 컬러플러스200이 있고,
흑백필름은 클래식한 입자감이 매력인 코닥 400TX나 일포드 HP5+를 추천한다.



앞서 이야기한 컬러필름의 경우 롤당 3000원 내외로 국내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며,
ISO 값도 200이므로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그리고 어두운 실내만 아니라면 전천후로 사용할 수 있다.

반면 흑백필름의 경우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다소 구하기 어려우며 가격 또한 롤당 8000원 이상으로 비싼 편이다.

따라서 흑백필름을 촬영하고 싶은데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미국 사진영상기자재 전문업체의 온라인몰을 통해 면세한도인 20만원 안쪽으로 30롤 정도 소량 구매할 경우
배송비를 포함하더라도 대략 롤당 6000원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만약 당신에게 약간의 열정과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100ft 롤필름(roll-film)을 구입한 후 필름로더(film loader)를 이용해 말아쓰는 방법을 고려할 수도 있겠다.

100ft 롤필름을 말면 36컷 짜리 20롤 가량을 만들 수 있으며
어떤 필름을 구입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정 흑백필름의 경우 롤당 3000원 정도로 컬러 네거티브 필름 가격으로 흑백필름을 경제적으로 즐길 수 있다.


‌포항, 2017



4. 촬영



카메라와 함께 필름까지 골랐으니 이제 셔터를 누르고 사진 찍으며 즐기는 일만 남았다.

카메라의 형식과 모델에 따라 필름 로딩방식이나 되감는 방식이 다르니 사용 전에는 반드시 해당 카메라 작동방법에 대한 정확한 숙지가 필요하다.

아울러 필름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와 같이 Exif 데이터를 저장할 수 없으므로
촬영일시와 장소, 사용된 렌즈와 설정값 등을 핸드폰 메모장 같은 곳에다 기록해두면 추후 현상된 필름을 정리할 때에 많은 도움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한 롤에 36컷이면 너무 적은거 아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분명 계실듯한데,
결론부터 말하면 36컷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정말 그렇다. 한번 찍어보면 안다.


실제로 필름을 카메라에 넣고 촬영에 나서면 막상 셔터단추를 누르기가 꽤나 망설여진다.
특히 디지털에 익숙한 이라면 더욱 그렇다.

필름은 당장 비용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디지털카메라였다면 서너 컷은 가볍게 눌렀을 장면에서 한 컷을 누르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필름은 우리를 좀더 신중하고 기다릴 줄 아는 사진가로 만들어준다.
이런 면에서 어쩌면 필름은 우리로 하여금 (싫든좋든) 흔히 이야기하는 좋은 사진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도와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오롯히 촬영에 집중하면 한 롤을 촬영하는데 평균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것 같다.

그리고 한 롤 촬영하고도 진이 쏙 빠지는 걸로 봐서 적어도 내 경우엔 36장이 결코 적은 양이 아닌 셈이다.



‌서울, 2017




5. 현상: 전문업체 vs 자가현상



현상(develop)란 노광된 필름의 숨어 있는 잠상을 현상액이라는 약품을 통해 눈에 보이는 상으로 나타내는 작업을 의미한다.

Adobe사의 라이트룸(lightroom)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프로그램 화면 우측 상단에 위치한 Develop 메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용어는 필름시대의 유산으로서
암실(darkroom)에서 현상/인화단계에 다양한 방법으로 노출, 대비를 조정하던 작업에 착안하여
디지털 시대 PC화면 속 명실(lightroom)속으로 그 기능이 옮아온 것이다.



현상을 하는데 있어 간편한 방법으로는
아무래도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전문 현상업체에 의뢰하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 전문현상소가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현상소 대부분 택배를 통해 현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니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이다.



한편, 독성이 강한 약품을 사용해 현상하는 컬러필름과 달리
흑백필름은 비교적 간단한 약품 몇 가지와 도구 그리고 빛이 차단될 수 있는 화장실만 있다면
비교적 간단하게 자가현상(self develop)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지방에 사는 관계로 업체에 보내려면 택배를 이용해야 하는데 1~2롤 찍고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10롤 내외로 모아서 보내야 한다.

내 경우엔 한달 정도 지나야 겨우 10롤 내외가 모이는 터라 찍고난 후 꽤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현상된 롤을 스캔할 때도 한꺼번에 물량이 몰려 부담스럽다.
(니콘 쿨스캔 IV ED 기종의 경우 36컷 짜리 한 롤 스캔하는데 1시간 반정도 소요됨)


이러한 불편함에 나는 두 롤이 모이면 집 화장실에서 현상하고 다음 날 바로 스캔해서 촬영한 사진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자가현상을 선호하게 되었다.

혹여 35mm 흑백필름 자가현상에 관심있으신 분을 위해 여기서 잠깐 준비물과 프로세스를 간략히 알아보자.



[준비물]


  - 현상탱크, 현상릴(플라스틱 릴 추천),
 
  - 필름피커, 암백, 가위, 온도계, 비어커, 필름클립,

  - 타이머 혹은 현상어플(아이폰 사용자의 경우 무료앱인 “Develop!” 추천)

  - 현상액, 정지액, 정착액, 수세촉진제, 포토플로(수적방지)


‌현상탱크와 릴

필름피커

‌암백

필름클립

‌[현상전 준비]


a. 촬영이 끝난 필름은 필름피커를 이용해 끝단부를 밖으로 빼낸다. (리와인딩할 때 끝단부가 끝까지 말려들어가지 않도록 감으면 굳이 빼낼 필요가 없다)

b. 현상 릴(Reel)에 잘 감기도록 필름 끝단부 양 귀퉁이를 45도 각도로 커팅한다.

c. 현상을 앞 둔 필름은 100% 차광된 공간에서 릴에 감아야 하므로 암백을 이용한다.

* 암백이 없는 경우 해가 완전히 진 후 창문이 없는 화장실에서 불을 끄고 작업해도 된다.

d. 암백에 필름, 가위, 현상탱크, 현상릴을 넣고 손끝 감각에 의존하여 필름을 플라스틱 릴에 감은 후 가위로 커팅한다. 눈으로 보지 않고 감아야하므로 밝은 곳에서 가상연습을 해보는 것이 좋다.

e. 릴에 모두 감았다면 현상탱크에 릴을 넣고 뚜껑을 확실하게 닫아 차광한 후 암백에서 꺼낸다.




[현상방법]   * 코닥 400TX 기준


a. 전습(Pre-wetting) - 물 20도, 1분간 실시

 - 전습액 투입 후, 1분간 연속 교반



b. 현상(Develop) - D76 working solution 300ml : 물 300ml, 20도, 9분 45초간 실시

 - 현상액 투입 후 60초간 연속교반

 - 30초마다 5초 교반

 - 마지막 10초 전부터 버리기 시작하며, 현상액은 2회 정도 재사용 가능



c. 정지(Stop-bath) - Kodak Indicator Stop bath, 스탑배스 9.6ml : 물 590.4ml, 20도, 1분간 실시

 - 정지액 투입 후 1분간 연속 교반 실시

 - 노란색의 용액 색깔이 보라색으로 변할 때까지 재활용 가능 (약 10회)


d. 정착 (Fix) - 1 : 4비율로 희석 (정착원액 120ml : 물 480ml), 20도, 10분간 실시

 - 현상방법과 동일하게 교반

 - 최초 1분간 연속교반 후 매 30초마다 교반

 - 정착액은 2회 정도 재사용 가능


e. 수세 (Washing) - Ilford Washaid, 1 : 4비율로 희석 (원액 120ml : 물 480ml)

 - 흐르는 물에 30초 수세 (수시로 교반 및 물교체)

 - 수세촉진제에 2분 연속 교반

 - 흐르는 물에 5분 이상 수세

 - 수세액은 2회 정도 재사용 가능


f. 포토플로 (Photo Flo) - 1 : 200 비율(3ml : 600ml), 1분 담그기

 - 포토플로에 1분간 담근 후 버리며 거품 생기므로 교반금지

 - 필름클립에 끼운 후 그늘진 곳 매달아 건조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의외로 준비할 것도 많고 절차도 복잡해보이지만, 약품 섞는 ‘비율’과 ‘온도’ 그리고 ‘시간’만 잘 지키면 걱정과 달리 별다른 문제 없이 현상이 잘 된다.

제시된 수치들은 한 치의 오차 정도는 가볍게 허용해주므로 너무 강박적으로 맞출 필요는 없다.

지레 스트레스 받지 말자.

Matt Day라는 유튜버의 흑백 자가현상 튜토리얼(https://www.youtube.com/watch?v=8I41UExVJWI)을 참고하시라.



‌6. 스캔



Scan은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연결해주는 과정이다.


현상을 통해 필름면에 나타난 상(image)은 스캐너를 통해 TIFF 파일로 변환된 후 포토샵이나 라이트룸 등 이미지편집툴을 이용하여 리터칭(retouching)이 가능하고 디지털파일의 형태로 보관 및 웹 상에 유통할 수 있게 된다.

즉, 필름은 스캔과정을 통해 디지털카메라에서 찍은 이미지파일과 같은 형태가 된다.




어차피 이렇게 디지털화(digitalization) 할 거면 “돈이며 시간들여 필름으로 왜 찍나?”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디지털과 필름의 Input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디지털카메라 센서가 담을 수 있는 이미지와 필름이 담을 수 있는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이고, 애써 우리가 필름을 사용하는 이유도 디지털이 할 수 없는 필름만이 표현해내는 특유의 이미지를 얻기 위함이다.

다만 우리는 필름이 뽑아주는 독특한 이미지를 디지털로 변환해주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스캐너는 평판 스캐너와 35mm 전용 스캐너가 있으며, 평판 스캐너는 다양한 포맷(35mm, 중형 등)을 스캔할 수 있다는 장점 대신 필름홀더와 필름 컬링(curling)정도에 따라 편평도 문제로 스캔 품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니콘 쿨스캔(coolscan)과 같은 35mm 전용스캐너는 별도의 어댑터를 이용하면 별도의 필름홀더에 끼울 필요 없이 6컷씩 잘라서 간편하게 스캔이 가능하나 중형필름 등 다양한 필름포맷에 대응하지 못한다. (니콘 쿨스캔 모델 중 중형필름을 지원하는 경우 가격이 높다)


중고 스캐너를 구입할 때에는 충격에 예민한 기기임을 감안하여 가능한 한 직거래를 추천하며, 사정상 택배거래를 해야 할 경우는 에어셀을 대량으로 투입하는 등 포장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히토요시, 2017





7. 리터칭



한때 #필름감성이라며 필름 느낌이 나도록 보정하는 방법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보정방법의 핵심은 암부를 끌어올려 살짝 바랜 느낌의 페이드(fade)를 가미하는 것이었다.

필름을 스캔하고 난 직후 아무런 보정을 하지 않은 사진은 암부가 들떠서 바로 이런 느낌이 나타나는데 아마도 무보정 스캔결과물을 흉내내는 것이 필름 느낌의 보정법이라고 생각되어졌나 보다.



무보정 스캔 결과물 역시 디지털 Raw파일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후반작업(post-processing)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노출 조정부터 암부에서 명부에 이르는 계조분포 그리고 필요하다면 닷징과 버닝까지 손을 봐주어야 맛깔나는 사진을 뽑아낼 수 있다. 무보정은 결코 좋은 사진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진행하는 프로세스를 공개하니 도움이 되면 좋겠다.


한 롤 스캔(니콘 쿨스캔 기준)이 끝나면 TIFF 파일을 포토샵으로 불러와 스팟힐링 브러쉬 툴(Spot healing brush tool)과 도장툴(Stamp tool) 등으로 먼지와 스크래치를 먼저 제거한다.

먼지들은 대부분 스팟힐링 브러시로 해결이 가능하나 배경이 복잡한 곳에 형성된 스크래치 등은 도장툴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음으로 파일들을 라이트룸에 임포트(Import)한 후 크롭툴(Crop tool)을 활용하여 3:2 비율로 잘라 스캔하면서 발생하는 테두리 부분을 제거한다.

그리고 라이트룸의 가장 강력한 기능 중 하나인 싱크로(Sync) 버튼으로 1롤 전체에 크로핑 효과를 일괄 적용시킨다.



이제 한 장씩 차근차근 리뷰하면서 각각의 사진에 걸맞는 노출과 콘트라스트를 조정한다.

적절하게 노광된 필름을 스캔한 경우 노출은 최대 ±1 스톱 내에서 조절하고 콘트라스트는 가능한 한 조정하지 않는 편이지만 필요시 ±5 내외로 조금 손을 본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암부의 경우 들떠서 스캔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라이트룸의 “Blacks” 값을 필요하다면 마이너스 20~50까지 과감하게 내려주는 편이다.

사진의 암부가 먹히지 않고 차분한 무게감이 생기는 정도를 기준으로 각자 파라미터 값을 정하기 바란다.

이렇게 전반적인 톤 조정이 끝나면 부분적인 닷징과 버닝을 실시한다. 어드저스트먼트 브러시 툴에서 노출값을 +0.33으로 조정하면 닷징, -0.33으로 조정하면 버닝효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해당 설정 후 필요한 부분에 브러시로 칠해주면 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ctrl+z를 눌러 실행을 취소할 수 있다.

조금 숙달이 되면 이런 방식으로 사진 한 장 리뷰하고 보정하는데, 1분 내외로 소요되고 최대 3분을 넘지 않는다.‌

라이트룸에서 3분이 넘는 보정이 필요하다면 포토샵이나 실버에펙스 같은 전문 보정 툴을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2016년 초 여름 라이카 m6를 구입해 필름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후 ‌ 적어도 매주 한 롤씩은 찍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도 여전히 갖고 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필름카메라는 나의 주력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다.

한창 필름을 즐기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긴 글 마지막에 덧붙이는 소망이라면, 필름사진이 과거의 영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 디지털 사진과 더불어 하나의 확고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Did video really kill the radio star?


서울,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