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ne system
사실 필름이건 디지털이건 피사체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밝기의 범위에 모두 대응하지 못한다.
사람 눈의 다이나믹레인지가 20 EV인데 비해, 디지털카메라 센서는 12 EV 내외고 아날로그 시절 관용도가 좋다는 네거티브필름은 10 EV에 그친다.
그러나 사진가는 주어진 장비의 한계를 그저 수용하고 운수에 맡기는 것이 아닌 주관적 의도를 가지고 때론 한계를 극복하며 이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므로 욕구와 현실 사이에 충돌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장면에서 가장 밝은 부분과 가장 어두운 부분의 차이가 너무 커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인화지가 수용할 수 있는 콘트라스트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하이라이트가 너무 밝거나 쉐도우가 너무 어두워서 프린트에서 디테일을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사진재료의 한계점으로 인해 사진가가 표현코자 하는 의도를 최종 결과물에 반영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요구가 대두되었고, ‘존 시스템(Zone system)’은 1930년대 안셀 아담스와 프레드 아처에 의하여 사진 현상과 인화에 대한 실용이론의 하나로 탄생하였다.
Cedric Wright, Ansel Adams: Photographing in Yosemite, 1942, gelatin-silver print, Collection Center for Creative Photography, The University of Arizona, © 1942 Cedric Wright
존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흑백필름의 특성과 현상 그리고 인화에 걸친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가장 핵심적인 개념으로서 ‘Previsualization’이 등장한다.
‘사전 시각화’라는 말로 번역되곤 하는데, 문자 그대로 사진가가 어떤 장면을 촬영할 때 피사체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최종 결과로서의 이미지를 ‘미리 떠올려본다’는 뜻이다.
사진가는 이러한 사전 시각화라는 과정을 통해 적절한 노출, 현상 그리고 인화 방법을 결정하고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존 시스템은 주어진 ‘도구’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되 그 도구가 표현할 수 있는 능력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능동적 형태의 사진 방법론’이라 말할 수 있겠다.
“Previsualization is the ability to anticipate a finished image before making the exposure” by Ansel Adams
기본적으로 존 시스템은 낱장 단위로 노출과 현상값을 달리할 수 있는 대형카메라 포맷인 sheet film필름에 가장 적합하며 흑백사진의 질감과 톤을 ‘사진가의 의도’에 따라 재현하기 위해 탄생한 이론이다.
흑백사진의 농담은 Pure black에서 Pure white에 이르기까지 연속된 톤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정한 농담의 구간을 11단계로 Zoning하여 톤의 변화를 단순화한 것이 Zone scale이다.
즉, 피사체와 필름 그리고 인화지가 나타낼 수 있는 계조의 범위를 로마숫자 0 ~ X까지 총 11단계로 압축하여 표본화한 것이다.
존의 1단계는 노출 1스탑만큼 차이가 나며, 존 V는 18%의 반사율을 가진 표준 그레이 테스트 카드의 톤에 해당하는 중간회색의 농담과 동일하다.
맨 좌측과 우측에 위치한 존 0와 존 X는 인화지가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어두운 검정색(네거티브의 투명한 부분)과 가장 밝은 흰색(인화지 베이스의 순수한 흰색)이며, 어둡거나 밝은 영역 중에서 질감의 표현이 가능한 범위는 ‘Texture range’라 명명된 존 II에서 존 VIII까지다.
존 III는 존 V의 중간 회색보다 2스탑 적은 노출 값으로 어두운 회색이다. 질감과 디테일이 살아 있는 가장 어두운 그늘이라 할 수 있으며, 풍경사진에서의 그늘이나 햇빛 아래 인물의 피부에 생긴 그늘에 해당하는 밝기이다.
존 VII은 존 V의 중간 회색보다 2스탑 많은 노출 값으로 밝은 회색이다.
완전한 질감과 디테일을 가지는 밝은 영역을 지칭한다.
한편, 네거티브 필름 현상시 현상시간에 따른 쉐도우와 하이라이트 농도변화에 대한 특성곡선을 알아보자.
위 그래프는 코닥 400TX 필름에 대한 현상특성곡선이며, 가로 축은 현상시간 세로축은 필름농도를 나타낸다. 그래프 해석에 있어 세로 축의 농도가 낮은 부분은 네거티브에서는 투명하게 그리고 인화지에는 어두운 shadow로 나타나며, 반대로 농도가 높은 부분은 네거티브에서는 어둡게 그리고 인화지에서 밝은 highlight로 표현된다는 점을 알아두자.
그래프에서 우리는 2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현상시간이 증가할수록 암부와 명부차이가 커지게 되고 그에 따라 콘트라스트가 높아진다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현상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암부의 변화폭은 크지 않은데 반해 명부의 농도변화는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존 시스템에서는 이러한 아날로그 현상의 화학적 반응특성을 활용하게 되며, 아래의 도식과 같이 ‘확장 현상’을 통하여 콘트라스트 증가와 하이라이트 부분을 명도 증가 혹은 ‘단축 현상’을 통해 콘트라스트 감소와 명도의 감소를 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설명한 ‘Previsualization’과 ‘존 스케일’ 그리고 ‘현상특성곡선’을 실제 촬영행위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일까.
아날로그 필름에서 존 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한 원칙은 ‘노출은 shadow에 맞추고 현상할 때는 highlight에 맞춰라’이다.
즉, 노출 측정단계에서 쉐도우 존 구역에 맞게(쉐도우가 쉐도우답게 나오도록) 촬영한 후 현상 단계에서 하이라이트 부분의 밝기를 필요에 따라 현상 확장 혹은 단축을 통해 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촬영하고자 하는 장면에서 디테일이 살아있는 shadow로 표현하고 싶은 부분(Zone III)의 스팟노출값이 EV 5인 반면 Zone VIII로 표현하고 싶은 부분의 실제 스팟노출값은 EV 12라고 하자.
shadow 노출에 맞추어 적정노출값인 EV 7(존 III의 EV 5보다 +2스탑)을 기준으로 노출을 정하여 촬영을 하면 하이라이트는 EV 12 – EV 7= EV 5이므로 존 스케일에서 존 V보다 5스탑 높은 존 X가 되어버려 디테일이 1도 없는 pure white로 인화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는 N-2의 단축 현상을 통해 존 III는 가능한 한 유지하면서 존 X는 2스탑 낮은 존 VIII로 낮추어 하이라이트 디테일을 살릴 수 있게 된다.
(존 시스템 보정표에서 6번 케이스에 해당)
George Tice, Petit's Mobil Gas Station, Cherry Hill, New Jersey, 1974
여기 조지 타이스의 흑백사진 한 장이 있다.
인공조명이 섞인 야간풍경을 촬영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진 안의 장면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촬영하게 되면 어두운 부분의 탱크 디테일을 잃어버리거나
반대로 편의점으로 보이는 가게의 불빛이 너무 강해서 디테일이 없이 하얗게 날아가버리기 십상이다.
따라서 그는 촬영 장소의 특정한 상황에 따라 한장 한장 노출을 달리 줄 수 있고 또 한 장씩 서로 다른 조건에 최적화된 현상을 할 수 있는 8x10 sheet film을 사용해서 촬영하였고,
존 시스템의 기본 원칙인 “Expose for the shadows, develop for the highlights”에 따라 타원형 탱크의 디테일을 살릴 수 있도록 존 II나 존 III에 해당하는 노출값을 주어 촬영한 후
단축현상을 통해 편의점 불빛의 노출을 낮추어 디테일을 살리고 사진 전체에 걸친 콘트라스트도 낮추어 주었다.
존 시스템이 탄생한 80년 전과 지금의 카메라와 사진재료 및 기술은 완전하게 달라졌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뷰파인더 안에서 쉐도우/하이라이트 클리핑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디지털 센서는 숨어있던 디테일도 끌어내는 16bit Raw파일 에디팅이 가능해져 버린 현재에도 과연 흑백 은염필름의 계조관리체계인 존 시스템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디지털 시대 존 시스템의 유효성 확인에 앞서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특성에 대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이미지는 태생적으로 계단형의 불연속적인 계조(gradation)를 가지며, 그 단계가 많을수록 계조 표현력이 자연스러워진다.
디지털 사진에서 계조는 비트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1비트는 흑과 백 2단계 뿐이며, 2비트면 4단계, 4비트면 8단계.. 이런식으로 표현단계가 지수적으로 상승한다.
우리가 디지털 이미지프로세싱에서 흔히 접하는 8비트는 2의 8제곱인 256단계, 16비트는 2의 16제곱인 65,536단계로 표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16비트는 8비트에 비해 256배 더 많은 단계로 세분화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RGB모니터의 한계가 8비트인데 16비트인들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이미지 프로세싱 때는 최대한 정보손실을 줄이고 결과물의 유통을 위한 용도로 마지막에 8비트 JPEG로 변환하는 것과 처음부터 손실된 정보를 가지고 편집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디지털 역시 필름시절 암실작업처럼 세심하고 체계적인 post-process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포토샵 만능주의로 인해 정작 촬영단계에서 노출에 대해 소홀해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재료가 좋은 음식을 만드는 중요한 전제이듯 디지털에서도 카메라 센서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기기적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러한 한계점 안에서 사진가의 표현의도를 가능한 한 반영해줄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들은 1세기 전 존 시스템의 출발점과 완전하게 동일하다.
RAW파일 리터칭
JPEG파일 리터칭
Raw 파일에서 하나는 16bit Tiff 포맷으로 다른 하나는 8bit Jpeg 포맷으로 엑스포트하여 포토샵에서 동일한 curve값으로 리터칭하였음.
결과물의 히스토그램을 비교해보면 Jpeg로 작업한 쪽이 불연속적으로 단절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디지털 센서로 촬영된 이미지는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존IX와 존X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계단현상(계조의 단절)이 생기게 되며, 이에 따라 디지털 촬영에서 만족스런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적정노출보다 1/2 ~ 2/3 스탑 가량 노출부족으로 촬영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촬영된 좋은 디지털 재료는 Lightroom에서 (Darkroom 현상특성곡선과 달리) 하이라이트 뿐 아니라 쉐도우에 대한 노출값 조정 가능하게 된다.
여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8비트 RGB값을 존 스케일로 변환한 표가 있다.
존 스케일은 기본적으로 범위(zone)를 나타내기 때문에 이러한 수치적 환산은 크게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존 스케일에서 설명하는 각 존의 특성을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존 III은 디테일이 살아있는 어두운 그늘, 존 VI는 햇볕 아래 피부톤과 같은 정성적 잣대 말이다.
양동마을, 2017
디지털 시대의 사진은 결코 아날로그 시대의 사진적 토양 없이 태어난 사생아가 아니다.
존 시스템이 비록 필름사진을 위해 만들어진 이론이라 할지라도 도구의 변화가 흑백사진에 있어 좋은 톤과 표현방법에 대한 판단기준까지 바꾸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알고 안하는 것과 모르고 못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즉시성과 편리함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에서도 선배 사진가와 거장들이 물려준 사진적 레거시를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밑거름 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